최근 사진은 더 이상 세계를 재현하는 매체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사진은 현실을 반영하거나 기록하는 장치에서 벗어나, 현실이 이미지로 구성되는 방식을 기술적으로 조직하는 실천으로 이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 환경과 알고리즘,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 속에서 가속화하고 있으며 사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전적 인식론에서 진공은 비어 있음, 물질의 부재, 의미의 결핍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현대 과학과 철학에서 진공은 더 이상 ‘무(無)’로 환원되지 않는다. 양자물리학에서 진공은 입자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의 요동과 잠재적 생성 가능성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장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진공은 완전한 공백이기보다 아직 형상화되지 않은 사건과 생성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들뢰즈에게 진공은 비가시적 힘들이 작동하는 장이며, 시몽동에게 개체화 이전의 전(前)개체적 장이다. 마수미는 이를 의미화 이전의 정동적 밀도로 사유한다. 여기에서 진공은 이미지 이전의 조건이자 기록 이전의 감응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진공은 의미가 부재한 상태가 아니라 의미가 아직 고정되지 않은 잠재적 장이다. 또한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에게 이미지는 고정된 의미나 단일한 시간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미지란 사라짐과 출현, 과거와 현재, 가시성과 비가시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사건이다. 그가 말하는 진동하는 이미지는 확정되지 않은 시간의 장이며 역사가 이미지 내부에서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를 드러낸다. 여기서 이미지란 언제나 불완전하며, 그 속에서 시간과 의미는 지속적으로 재배치된다. 육후이의 코스모테크닉스적 사유는 이러한 논의를 기술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그의 관점에서 진공은 특정한 기술적 우주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지점이다. 이 시각에서 볼 때 디지털 및 AI 시대의 사진에 나타나는 진공은 세계를 재현하는 매체로서의 기능이 해체되고 세계를 기술적으로 구성하는 방법론으로 이행하는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은 점차 이미지를 생산하는 기술적 장치에서 벗어나 어떤 세계가 이미지로서 생성, 유통될 수 있는지를 선택하는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즉, 디지털 이후의 사진은 현실을 채우거나 대체하기보다 현실과 이미지 사이에 하나의 간극, 진공을 형성하고 있다. 이 진공은 결여의 공간이 아니라 이미지가 생성되고 작동하는지를 드러내는 조건의 장이다. 사진은 재현의 논리를 포기하고 센서, 알고리즘, 인터페이스 등 이미지 생산의 조건을 노출하며 현실이 이미지로 환원되는 과정 자체를 가시화한다. AI 이미지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AI 이미지는 물리적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지시 관계를 무시한 채 기술적 계산과 확률적 생성으로 출현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역사상 전례 없는 완전한 진공 상태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진공은 이미지 생성의 가능성이며 사진은 시뮬레이션 혹은 정동을 조직하는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사진의 진공이 기술적 우주관의 멈춘 지점이라면 이미지의 진동은 이 진공을 정지된 상태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진공이 없다면 진동은 발생할 수 없다. 의미의 공백은 이미지를 떨리게 한다. 진공은 진동의 조건이 되고 진동은 진공의 감각적 형식이 된다. 출현과 소멸이 반복되는 이 공간에서 사진은 아무것도 증언하지 않기에 오히려 기존 서사의 연속성을 균열 내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진공과 진동은 세계의 시간과 의미를 단일한 기술적 우주로 통합해 온 근대적 인식 체계에 대한 하나의 저항으로 읽힐 수 있다. 그것은 시간과 감각, 의미를 다시 다층적으로 분기시키는 잠재성이다.
본 전시에 참여한 14명의 작가는 사진의 실험적, 매체적 탐구를 넘어 이러한 변화의 조건 속에서 사진의 가능성을 재사유한다. 이들에게 사진은 의미 이전의 상태가 시각화하는 과정이며, 다성적 발화가 출현하는 모체이다. 오늘날 사진의 조건으로서 ‘진공 × 진동’은 서로 다른 기술적, 감각적 우주들이 중첩하는 지점이다. 참여 작가들은 사진의 전통적 용법을 해체하며 아날로그의 흔적, 디지털 계산, 알고리즘적 생성이 불일치한 상태로 병치되는 장면을 제시한다. 이 불일치는 단일한 기술적 우주관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이며 감각과 의미의 다양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이다. 하여 이 전시에서 말하는 ‘진공 × 진동’은 비어 있음이 만들어 내는 정적인 상태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전시 공간과 이미지들 사이에 형성된 진공과 진동은 관객에게 사유 이전의 감응으로 스며들어, 새로운 연결과 확장을 제안할 것이다. 글_박형근